유리의 역사 KFGWA가 유리의 역사에 대하여 알려드립니다.
- 유리 Glass
- 반짝 빛나는 것 고대부터 흔히 ‘유리’는 투명하고 빛나는 물질 등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어 왔는데,
이는 유리를 나타내는 ‘Glass 란 말의 라틴 어원은 “Glaesum” (lustrous and transparent)이고
유리를 나타내는 또다른 말인 “Vitreous”의 어원 또한 “Vitrum”(luster orshine)인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유리의 시작
투명한 유리가 만들어지게 된 것은 유리가 창조된 때로부터 오랜 뒤인 기원전 1세기 로마에서 핸드 블로잉(Hand Blow ing)법이 발명되면서 부터 입니다. 일단 투명한 유리가 만들어지자 그것을 창에 끼워 비와 바람을 막음과 동시에 태양 광선을 실내로 끌어들이며, 창 밖의 풍경을 실내에서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사람들의 가슴에 싹트게 되었습니다.
최초에는 병의 바닥을 잘라 벽에 끼움으로써 실내로 빛이 들어오도록 하였습니다. 다음 단계에서는 유리의 가는 조각을 틀에 끼워 창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소망은 그에 그치지 않고 판장의 유리를 갈망하였습니다. 투명하고 판판한 유리에의 동경-이것이 곧 판유리 탄생의 원동력이었습니다.
4세기 초엽, 로마인 제롬(Jerome)에 의한 책자에는, 묽게 녹은 유리를 크고 평탄한 돌 위에 흘려 창(窓)유리를 만드는 방법이 기술(記述)되어 있습니다. 핸드 블로잉법으로는 불가능한 판장(板狀)의 유리를 제조하기 위하여 고안한 판유리 의 제조법이었습니다. 이로서 평면의 유리를 제조할 수는 있었으나 투명도가 좋지 않고, 서냉(徐冷)이 되지 않아 파손이 쉽고, 큰 유리를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건축유리로의 발전
중세기에 이르러 각종 색유리 조각을 이용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사원의 창 등에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한편 11세기로 부터 18세기에 걸쳐 베니스를 중심으로 유리의 건축으로의 도입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창유리는 제조가 어렵고, 고가였으므로 교회, 왕족이나 부호의 저택 등 극히 한정된 건물에만 사용되었습니다. 사치품으로서 창유리의 사용에 대한 세금이 부과된 시대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15세기의 기록에 의하면 오스트리아의 비인의 경우, 유리창을 사용한 가옥이 전체의 절반에 달했다고 합니다.
거울의 탄생
베니스에서는 16세기 초, 달르 갈로(Dal Gallo)형제에 의하여 거울의 은경반응법(銀鏡反應法)이 발명되었습니다. 그를 기초로 이탈리아의 베니스 근처에 무라노(Murano)라는 섬에서 비밀스레 생산, 유럽 각지로 수출되었습니다. 당시 거울은 더할 나위 없는 귀중품이어서 그 제조법을 탐지하고자 많은 나라들이 경합을 벌였다고 합니다. 특히 프랑스의 전제 군주 루이14세의 거울에 대한 집념은 거의 전설적이었습니다. 거울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그는 프랑스에서 유리를 생산, 스스로의 궁전을 장식하고자 거울의 제조법 탐지에 많은 힘을 기울였습니다. 결국 각고 끝에 얻은 유리는 부르봉왕조의 호화로움을 더욱 빛나게 했으니, 베르사이유 궁전의 유명한『거울의방』이 그것입니다.
베르사이유 궁전에는『거울의 방』외에도 많은 유리가 사용된 바, 기록에 의하면, 당시 4㎡ 크기의 유리가격은 유리기술자 한 사람의 거의 4만 시간의 임금에 상당했으니 베르사이유 궁전의 호화로움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겠습니다. 이를 발판으로 프랑스는 오래지 않아 유럽제일의 마판(磨板)유리, 거울의 생산국으로 등장했습니다.
1665년에 창립된 유명한 프랑스「생 고뱅(Saint Gobain)社」야말로 루이 14세에 의해「왕립제경소-王立製鏡所」로 설립되어 무라노섬에서 데려온 유리기술자를 이용, 거울의 제조를 시작한 회사입니다.
유리의 공업화와 대량생산
일단 건축자재로서 사용되기 시작하자 판유리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공업화에 의한 양산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크라운法(Crown Method)을 시초로 판유리 제조법은 핸드실린더法(HandCylin der Method) 및 라버法(Lubber Method)을 거쳐 연속식 인상법인 풀콜法(Fourcault Method), 콜번法(ColburnMethod), 피츠버그法(Pittsburgh Method)으로 발달하였습니다.
동시에 마판(磨板)유리 및 무늬유리가 탄생되었습니다. 이윽고 오늘날 판유리공업의 꽃인 플로트 공법(Float Processing)이 탄생되기에 이릅니다. 18세기에 들어와 판유리의 제조법이 급속히 발달하게 된 데에는 원료, 연료 및 로(Furnace)의 개량에 힘입은 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18세기 후반에 일어난 산업혁명도 유리공업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유리의 원료를 용해(熔解)하기 위한 연료로는 석탄이 사용되었습니다. 또 유리의 원료 중 알카리원을 초목회(草木灰)나 해초회(海草灰)로부터 얻음에 따르는 불편을 배제하기 위하여 유리공업의 발달과 병행하여 식염으로부터 소다회를 만들어 내는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1789년 유명한 프랑스의 화학자 루브랑은 드디어 소다회의 새로운 제조법인 루브랑법을 완성, 유리의 원료에 일대 변혁을 일으켰습니다. 벨기에에서도 1891년 솔베이가 암모니아 소다법에 의한 소다회의 제조에 성공하였습니다. 보다 특기할 사항은 1857년 독일의 지맨스(Siemens)형제에 의해서 발명된 유리 용해로(熔解爐)의 축열식 가열방법으로서, 이는 유리공업에 있어서 하나의 획기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로서 유리의 용융(熔融)이 보다 용이해졌고 또한 연소효율도 높아졌습니다. 이 방법은 당초 제강로(製鋼爐)에 적용하였으나, 1873년 벨기에에서 이를 채택한 연속식 용해로가 만들어짐으로써 비로소 유리의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 시트글라스 Sheet Glass
- 판유리 시트글라스는 넓게 펴진 얇은 금속판이란 뜻의 “Sheet”와 유리란 뜻을 지닌
“Glass”가 만나 넓게 펴진 유리, 즉 “판유리”를 뜻하는 용어이다.
크라운 法 (Crown Method)
크라운法(Crown Method)에 의한 창문유리의 제조는 3세기경, 즉 고대 로마시대에 시리아인에 의해서 개발되었습니다. 이 제조법은 18세기 말까지 번창했으며, 영국에서는 20세기까지도 이 방법을 이용, 유리를 제조하는 공장이 있었습니다. 블로우 파이프(Blow Pipe)끝에 녹은 유리를 묻혀 감은 후, 불어서 구(球)를 만들며, 적당한 크기로 되었을때 반대편에 펀티(Punty: 용융(熔融)유리를 다루기 위해 사용하는 쇠막대)를 용착(熔着)시키고 블로우 파이프를 떼어 냅니다. 다음 단계에서 유리구(球)를 가열, 부드럽게 만든 후 펀티를 고속 회전시켜 원심력을 이용, 평면 유리를 생산하는 방법입니다.
처음부터 큰 원판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 직경 10~12cm 정도의 원판을 만든 후 그것을 납(鉛)으로 연결, 사용 하였습니다. 이는 그 당시의 회화나 동판화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 원판의 한가운데에 배꼽과도 같은 펀티 자국이 남아있습니다.
이 크라운법은 점차 연구, 개량되어 직경 1m의 원판을 만들 수 있게까지 되었으며 배꼽부분을 피해 사각형으로 절단하는 기술도 개발되었습니다. 그러나 균일한 두께나 면이 고른 유리를 만들 수는 없었고 또 크기에 한도가 있으며 생산이 비능률적이라는 점 등, 몇몇 결점이 내재된 상태였습니다. 또 당시까지도 다이아몬드에 의한 절단법이 발견되지않아 유리위에 뜨거운 인두를 댄 후 냉수를 부어서 손집게로 다듬는 등 절단이나 가공이 용이하지 않았습니다.
핸드 실린더 法 (Hand Cylinder Method)
1800년 경 크라운法에 비하여 대형 창유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으로서 실린더법이 독일에서 개발되었습니다. 유리물을 블로우 파이프 끝에 말아 올려 크라운法과 같이 먼저 유리 구(球)를 만든다음, 작업대 밑에 있는 깊은 원통 속에 넣고 흔들면서 계속 불어 원통을 만든 후, 양쪽 끝 부분을 잘라냅니다.
잘려진 원통은 직경이 30~50cm, 길이가 120~180cm 정도인데 이를 길이 방향으로 절단하여 요(窯 : 도자기를 굽는 가마)속에서 재가열하면 평평한 판이 됩니다. 이방법은 크라운法 보다 큰 유리를 만들 수 있었고 중앙의 펀티 자국도 없을 뿐 아니라 제조원가도 낮았습니다. 그러나 냉각과 재가열의 반복작업으로 인하여 유리의 표면이 고르지 못하고 두께의 차도 심하였습니다.
머신 실린더 法 (Machine Cylinder Method, Lubber Method)
20세기에 이르러 판유리의 제조법은 급속히 발전, 대량생산 시대로 돌입했습니다. 핸드 실린더법은 많은 숙련공을 필요로 하고 제조시간 또한 길었습니다. 이 무렵 인간이 숨을 불어넣는 대신 압축공기를 사용하는 방법이 개발되었습니다. 이는 19세기 말엽, 유럽에서도 고안된 바 있으나 공업화한 것은 1903년 미국의 라버(Lubber)와 「 아메리칸윈도우글래스社」였습니다.
유리물을 로(furnace)에서 일단 큰 국자를 사용, 도가니로 옮긴 후, 실린더를 밀어 넣고 압축공기를 불어넣으면서 서서히 당겨 올리는 방법입니다. 이는 최초의 기계화된 성형법(成型法)으로서 제1차 세계대전 후까지 사용되었습니다. 이 방법으로서 길이 12m,직경 0.9m의 긴 유리까지 만들 수 있었습니다.
머신 실린더법(Machine Cylinder Method)에 의한 판유리의 생산은 품질이 우수한 연속식 인상법에 의한 판유리생산이 시작되기까지 급격히 증가되었으나 1929년에 이르러 생산이 중지되었습니다. 1925년의 판유리 생산량 중 59%는 머신 실린더법, 29%는 콜번법, 10%는 풀콜법, 2%는 핸드 실린더법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풀콜 法 (Fourcault Method)
연속식 수직인상법인 풀콜법은 1903년부터 연구가 시작되어 1904년 특허를 취득하기에 이르릅니다. 그러나 완성 되기까지 변하기 쉬운 유리의 작업온도, 인상기 밑부분 주위의 냉각, 유리의 조성문제 등 많은 난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럼에도 노력을 거듭, 제1차 세계대전직전(1913년) 벨기에 에서 최초로 실용화할 수 있게되고 독일인과의 협력에 의하여 그 실용성은 더욱 향상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중 독일 점령하에 있다가 전쟁이 끝난 후 다시 벨기에로 돌아온 풀콜은 적국에 협력했다는 죄목으로 투옥되어 결국 감옥에서 병사합니다. 이 방법은 결국 풀콜이 병사한 직후인 1919년 완성됩니다.
데비튜스(Debiteuse)라고 부르는 내화물(耐火物)을 로의 끝부분에 있는 드로잉 킬른(DrawingKiln)에 넣고 데비튜스의 슬로트(Slot)로부터 베이트(Bait)를 사용하여 원판을 인상합니다. 이때 데비튜스 상부에 있는 시트 쿨러(Sheet Cooler)는 유리를 냉각하여 적당히 경화(硬化)시키며 엣지(Edge)를 잡아주는 두쌍의 널러【Knurler 또는 스트레처(Stretcher)】는 원판의 폭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약 6m높이의 서냉탑 속의 아스베스토스 로울러(Asbestos Roller)사이를 통과하여 원판실로 올라갑니다. 원판의 두께는 주로 인상속도에 의하여 결정되며 2mm의 인상속도는 분당 65˝ 정도이고,머신(Machine)의 폭은 통상 80~90˝입니다.
이 방식의 특징은 그 용해능력에 따라서 하나의 용해로에 다수의 인상기를 부착시킬수 있다는 점이며, 9~12개의 인상기를 부착시킬 수 있었습니다. 데비튜스의 슬로트는 주변의 침식, 혹은 실투생성(失透生成)등에 의하여 변형하기 쉽습니다. 따라서 원판의 두께에 부분적인 불균등이 발생하며, 작은 생성물이 원판에 부착하는 등 결점이 있기 때문에 어느정도 사용한 데비튜스는 적당한 시기에 교체해야 합니다.
풀콜법, 콜번법 및 실린더법은 1930년대에 서로 경합을 벌였으나 풀콜법이 단연 우세, 제2차세계대전 직전까지 42개국에 800여기의 머신이 설치되었습니다.
콜번 法 (Colburn Method)
콜번법은 1905년 미국의 콜번이 특허를 얻은 후 1916년 리비 오웬스(Libbey-Owens)에 의해서 개량되어 완전히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풀콜법과 다른 점은 데비튜스를 사용하지 않고 원판을 용융유리면에서 직접 인상합니다. 인상된 원판은 용융유리면에서 70cm거리에 있는 벤딩 로울(Bending Roll)에 의해서 직각으로 굽혀진 후 수평 로울에 의해 약 60m의 아닐링 레어(Annealing Lehr)를 통과합니다. 이 때 원판의 양 끝은 널러에 끼워져서 일정한 폭을 유지하게 됩니다.
원판의 두께는 주로 인상속도에 의해서 결정되지만 원판의 두께를 일정하게 하기 위해서는 원판의 폭 방향으로 용융유리를 동일하게 냉각시켜야 하는 바 이것이 콜번법의 주요 포인트입니다. 2mm의 인상속도는 분당 130˝ 정도이며 원판폭은 통상 100~158˝ 입니다. 또한 이 방법에 따르면 유리가 수평으로 생산되기 때문에 아닐링 레어를 길게 할 수 있어 서냉이 가능, 절단이 용이합니다. 그러나 렌딩 로울에이 물이 부착한다든가, 로울 표면이 긁히면 그것이 그대로 원판면에 나타나기 때문에 벤딩 로울을 수시로 연마,교체하여야 합니다. 콜번법은 하나의 로에 1~4개의 인상기를 부착할 수 있습니다.
피츠버그 法 (Pittsburgh Method)
「PPG社」는 풀콜법과 콜번법이 개발될 당시 이미 마판유리 메이커로서의 위치를 확립, 대규모 설비를 갖고 있었 습니다. 그러나 풀콜법과 콜번법의 특허권을 인수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1918년~1925년에 걸쳐 그레고리 우스(Gregorious)로 하여금 새로운 판유리 인상법의 개발을 진행시킨 바, 마침내 1926년 특허를 취득합니다. 이는 풀콜법과 같은 수직인상법이지만 풀콜법의 데비튜스를 사용하지 않고 드로우 바(Draw Bar)라고 부르는 내화벽돌을 드로잉 킬른의 유리물속에 잠기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유표면으로부터 유리가 인상되는 바 이 점은 콜번법과 유사합니다.
이 피츠버그법은 1930년 경 실용화되었으나 풀콜법이나 콜번법에 의한 판유리에 비하여 품질이나 생산효율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후 「필킹톤(Philkington)社」가 이를 도입, 개량함으로써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효율이나 품질을 매우 높은 수준에까지 끌어올리게 되었습니다. 개발 초기에는 로당4기의 머신을 부착했으나 나중에는 8기로 늘어났으며, 그후에는 10기의 머신까지도 부착시킬수 있었습니다.
- 압연 Rolling
- 금속가공법 금속의 소성을 이용해서 고온 또는 상온의 금속재료를 회전하는 2개의 롤 사이로
통과시켜서 여러가지 형태의 재료를 가공하는 방법
테이블 캐스팅法 (Table Casting Method)
1687년 프랑스「생 고뱅社」의 버나드 패롯(Bernard Perrot)이 개발한 압연법은 유리물을 로에서 도가니로 옮긴 후, 표면에 떠있는 불순물을 제거하여 캐스팅테이블(Casting Table )위에 유리물을 붓고 로울러로 밀어 판유리를 만든 후 서냉로(徐冷爐)에서 서냉시키는 방법입니다.
롤 아우트法 (Roll-Out Method)
2개의 롤러 사이로 유리물을 흘려 보내면서 압연하여 판유리를 제조하는 방법으로 1920년에 개발된 비헤로우 세미 컨티뉴스 캐스팅法(Bicheroux Semi-Continuous Casting Method)과 PPG링 로울法(Ring-Roll Method)이 대표적인 방법입니다. 비헤로우법은 유리 속에 기포가 혼입되거나 유리의 표면에 주름이 지는 현상을 현저하게 감소시킬수 있는 방법으로 초기의 테이블 캐스팅法보다 용융유리의 낙하거리를 짧게 하여 도가니에서 용융유리를 붓는 제조공정 입니다.
롤 아우트法(Roll-Out Method)는 판유리의 크기를 용이하게 조정할 수 있으나 완전히 투명한 유리는 제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롤에 무늬를 조각하면 무늬판유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또 팽창계수가 유리에 가까운 철망이나 금속선을 삽입, 망입유리를 제조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압연, 성형된 판유리의 양면을 연마함으로써 투명한 고급 판유리 즉 마판(磨板)유리를 만듭니다.
이상과 같이 압연법과 연마기술과의 병용에 의하여 투명한 대형 판유리의 생산이 가능했습니다. 또한 역사적으로도 판유리의 인상법이 개발되기 훨씬 이전에 마판유리라는 고급품을 생산, 판유리 공업발전의 기초를 형성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연속식 로울 아우트法 (Continuous Roll-Out Method)
자동차산업에서 마판유리가 다량 소비되자, 비헤로우의 제조공정이 개발된 시기에 미국의 헨리 포드(Henry Ford)는 스스로 마판유리를 제조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포드는 자동차의 연속적인 생산라인을 완성시킨 아베이(Avery)에게 마판유리 제조공장의 설립을 의뢰, 연속적인 마판유리 제조공정을 완성시켰습니다. 유리제조에 대한 지식이 전혀없는 아베이는 처음, 유리 용해로밑에 10ft 깊이의 구멍을 갖는 로를 축조하여 이 구멍으로 유리 리본(Ribbon)을 부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실패를 거듭했으나 확고한 재정적 뒷받침에 의하여 1921년 2개의 로울 사이로 용융유리를 연속적으로 흐르게 하는 방법의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유리의 품질이 좋지 않아 「포드社」와「필킹톤社」가 긴밀한 유대관계를 수립하고 품질을 향상시킴으로써 양산체제의 기초가 이룩되었습니다.
한편 「리비 오웬스 글라스社」는 1925년 콜번 시트 드로잉법(Colburn Sheet Drawing Method)을 개량, 마판유리용 원판을 생산하였습니다.
- 마판유리 Polished Plate Glass
- 연마가공한판유리 : 마판유리 제조기술은 이미 300여년전에 개발되어, 압연법을 이용, 대형 판유리가 생산되었다.
이를 연마하여 마판유리를 만든 후, 은경반응에 의하여 거울을 만들었는데, 당시 거울은 베르사이유 궁전에 있다.
회전 테이블 연마 法 (Rolling Table Grinding & Polishing Method)
초기의 마판유리는 유리를 회전테이블의 석고 위에 놓고 모래 현탁액을 사용, 그라인딩(Grinding)한후 유리를 뒤집어 놓고 똑같은 공정을 거듭합니다. 이 때 소요되는 시간은 8~12시간입니다. 1차 가공이 끝난 유리는 세척 후 스무싱(Smoothing)테이블에서 스무싱한후 폴리싱 머신(Polishing Machine)에서 회전식 헤드【펠트판(Felt Pad), 주철제(鑄鐵製)블록(Iron Block)부착】로 연마 했습니다. 이는 실험실적인 소형 테이블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확대되어 20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테이블의 직경이 10m 이상이나 되는 초대형 마판유리의 제조까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연속식 테이블 연마 法 (Continuous Conveyor Grinding & Polishing Method)
포드와 피츠버그법은 테이블의 바퀴가 일정한 궤도 위를 구르도록 되어 있는바, 1925년 「필킹톤社」가 개발한 방법은 테이블에 흠이 있어 선반과 같이 가이드를 따라 활주할수 있고, 테이블들은 서로 연결되어있어 테이블의 연결위치에 관계없이 유리를 올려놓을수 있습니다. 연속식 연마법의 개발에 의해 마판유리의 양산체제가 확립되었습니다.
재연마 法 (Twin Grinding & Polishing Method)
앞에서 말한 연속식 로울 아우트法에서 생산되는 유리를 그대로 연마공정에 투입하여 양면을 동시에 가공하는 기구가1939년 이후 영국의 「필킹톤社」와 벨기에의 휴즈(Heuze), 말래베즈(Malavez) 및 시몬(Simon)에 의해서 개발 되었습니다. 이들 두 방법은 테이블을 사용하지 않고 고른 표면의 보다 우수한 품질의 마판유리를 생산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유리를 지지하는 것은 밑면의 그라인딩 머신과 폴리싱 유니트(Polishing Unit)이며 연마 가공 공정은 앞서 말한 테이블 연마법과 동일합니다.
듀플렉스, 쥬상 法 (Duplex, Jusant Method)
연속식 로울 아우트법에서 생산되는 유리의 양면을 동시에 그리고 연속적으로 연마시켜 전공정을 완료하는 방법이1958년 벨기에의 「글래세리 드 라 상블(Glacerie De La Samble:글래세레 드 세인트 로쉬(Glaceries De St. Roch)에 흡수됨)사」에 의해 개발되었습니다. 이를 듀플렉스(Duplex)연마법이라고 하며 실로 획기적인 방법이라 하겠습니다. 한편 듀플렉스와 거의 동시에 프랑스의 「생 고뱅社」에 의해서 쥬상연마法이 개발되었습니다. 이방법은 투입과정이「필킹톤社」의 양면 동시연마법과 동일하지만 연마는 진동연마(振動硏磨)法(연마용 헤드가 회전마찰을 하지 않고 진동마찰을 함)에 의한「생 고뱅社」의 독특한 방법입니다. 이밖에도 산연마(酸硏磨)法이 「PPG社」에서 시도 되었으나 성과없이 끝나고 말았습니다.
- 플로트 유리 Float Glass
- 금속욕조(Tin bath)라고 부르는 가마에 용융된 주석을 일정한 깊이로 채워놓고
그 위로 액체상태의 유리물을 수평으로 흘러보내서 판유리를 만드는 방법
발생동기
약 70년전 미국의 물리학자 히치코크(Hitchcock) 와 힐(Heal)에 의하여 용융유리와 용융금속과의 접촉면에 아름다운 거울면이 형성된다는 것이 실험적으로 입증되어 이미 특허등록까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아직 유리물을 흘려서 판유리를 연속적으로 제조하는 방법이 개발되지 못한 상태였으니만큼 단순히 아이디어에 그쳤습니다. 플로트 유리의 창시자인 알라스테어 필킹톤(Alastair Philkington)경은 1952년 어느 날, 저녁식사 후 부엌에서 식기를 닦는 부인을 도와주다가 이와 같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이를 계기로 연구를 시작, 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노력한 끝에 그 착상을 실현 시켰다고 합니다. 그는 플로트법의 개발에 의한 공적을 인정 받아「영국 학사원」의 특별지위를 비롯, 숱한 훈장을 받았으며, 1970년에는 작위를 받았습니다.
생산으로의 시행착오
플로트법이 탄생된 초기에는, 롤 아우트법에 의하여 유리물을 폭 3,000mm정도의 판유리로서 곧바로 틴 배스(Tin Bath) 에 집어 넣을때, 판유리의 밑면은 용융주석면에 판유리의 윗면은 자연유동에 의해서 수평면을 갖는 판유리가 만들어 지리라는 정도의 기대하에 기업화를 시도했다고합니다. 그러나 높은 온도로 둘러쌓여 있는 로울에 의한 제반 결점으로 인하여 한때는 포기상태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유리물을 용해로에서 내화물로 된 유출구를 통하여 직접 용융주석위로 흘려보내 여기서 유리 리본을 형성시킴으로써 비록 여러 번의 실패를 거듭했으나 마침내 1959년 훌륭한 품질의유리를 제조하게 되었고, 또한 공식적으로 플로트법의 성공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우수한 유리 생산 기술력
틴 배스의 환원분위기(還元雰圍氣)를 형성시키기 위하여 사용하던 도시가스로부터의 질소가스(N₂)로의 전환,수소 가스(H₂)의 첨가, 흑연에 의한 틴 배스의 벽(壁)보호, 유출구에서의 제어용 벽돌의 개발, 특히 판유리 밑면에 융착(融 着)하는 주석의 조절 및 제거를 위한 언더 클리너(Under Cleaner)를 설치하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의 해결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 바, 그사이에 판유리가 10만톤이나 쌓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연구개발비가 4백만파운드에 달해 성공 되기 직전, 도산의 우려까지도 있었다고 합니다. 플로트 법에 의해 제조된 판유리는 재래식 인상법에 의해 제조된 유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좋은 표면을 가진 바, 마판유리에 필적하는 것이었습니다. 개발 당초의 기술로는 약 6mm 두께 밖에는 생산할 수 없었으나 마침 당시의 마판유리도 6mm 두께에 수요가 편중되어 있었습니다. 플로트 유리의 기술은 그 후 진보를 거듭, 현재에 이르러서는 최저 2mm, 최고 20mm 이상도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유리로의 발전
1960년대 초반 박판(薄板)유리와 후판(厚板)유리의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원판두께를 조절하는 새로운 방법과 폭과 두께를 신속하게 바꿀 수 있는 공정이 급속도로 발전하였습니다. 플로트 공정은 1960년대 초 공업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해외의 제조업자들에게 특허가 양도된 바, 미국의 「PPG社」가 최초로 특허를 양도 받았습니다. 오늘날 플로트 유리 공장은 그 수가 급격히 늘어났으며 반면에 마판유리 공장은 그 수가 현저하게 감소하게 되었습니다. 판유리 공업계는 플로트 공법의 출현으로 제2의 대혁명을 맞이했다고 하겠습니다.